똑같이 한 므나를 받은 인생
[다락방 기도] 누가복음 19:11-27
 
김영철

요즈음 며칠동안 CNN뉴스에서는 저녁시간마다 볼티모어 시위현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흑인청년 그레이가 흉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호송차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의식불명에 빠졌고, 일주일 후에 사망했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이 있던 날에 성난 흑인들이 시위를 시작했고 그 시위대가 시내를 돌며 상점을 약탈하고 경찰차를 불태우며 폭력적으로 변했습니다. 볼티모어에서 폭동사태로 이어진 시위가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지로 확산되며 미 전역에서 연대하여 항의시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목사 100여명이 험악해진 이 지역에 다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였고 서로 팔짱을 끼고 평화를 위해 행진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매릴랜드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방위군을 투입했고,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약탈과 방화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LA에서, 작년 여름에는 미주리의 퍼거슨 시에서도 유사한 시위와 폭동이 있었지요? 뉴욕에서도 장난감총을 갖고 있던 12세 흑인소년이 백인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는데, 미국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래로 미국에서 흑백 인종문제가 해결되리라고 기대했었는데, 불행히도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흑인밀집 지역에는 실업률이 50%가 넘는다는데요, 흑인의 사회적, 경제적 여건을 개선하고 가난한 흑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향상시키는 등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와 평등의 사회가 이루어져, 저소득층의 소득감소와 빈곤 및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사라지기까지는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빈곤과 불평등

빈곤과 불평등이 만연한 오늘의 사회와 불의하고 부조리한 현실은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을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는 정치적으로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로마총독이 로마군대를 끌고와 다스리고 있었고 종교적으로도 부패한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으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당하여 신음하면서 이스라엘을 구해줄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하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따라 왔습니다. 이런 군중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가시면 제자들과 군중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시고 붙잡히셔서 온갖 치욕과 고난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여러 차례 예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군중들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다윗왕국의 회복이 당장에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를 쫓아내고 새 나라의 왕이 되시리라 기대했습니다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배반한 죄악의 세상에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불의한 기득권과 충돌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빈곤하게 만들고 억압하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구조들에 대항하여 사람들을 수탈하는 모든 체제들 속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고 부할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이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시고 제자도를 가르쳐주시려고 본문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

본문 11절 앞에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라고 했는데요, 므나의 비유가 본문 앞에 나오는 삭개오의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본문 바로 앞을 보면, 여리고성에 사는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이 삭개오 집에 들어가시자, 사람들이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하고 수군거립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 후에 예수님은 마지막 사역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는데요, 예수님을 향한 기대로 사람들의 마음이 들떠있었습니다. 매국노라고 여겼던 삭개오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받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가 고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시점에 예수님이 열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요, 왕위를 받으려고 떠나는 귀인이 열 명의 종들에게 한 므나씩 주고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지시한 얘기입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보니 종들의 성과가 다양했는데, 장사하여 많이 남긴 자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상급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장사를 않고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자의 것은 빼앗아 다른 자들에게 주라고 명령했습니다. 본문 11절 뒤에 보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고 했으니, 그들은 하나님나라가 곧 임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왕권을 장악하면 곧바로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다고 했는데, 여기서 귀인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을 다스릴 왕권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왕위를 받아 먼 나라로 갔다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어 하늘나라로 승천하실 것을 말한 것입니다. 본문 14절에는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 하노이다 하였더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왕권을 가지고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음을 또한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을 '어린 양'이자, '만왕의 왕'으로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예언되었던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진정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이 전파하시는 천국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예수님은 하나님이 뜻하신 바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시고 그리스도를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 대속을 치르시고 왕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대로 심판주로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비유가 상기시키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BC 4 세기 경 헤롯왕이 죽자, 그의 왕국은 세 명의 아들들인 필립, 안티파스, 그리고 아켈라우스로 3분 되었습니다. 첫째 아들 아켈라우스에게는 유대와 사마리아가, 둘째 아들 안티파스에게는 갈릴리가 그리고 셋째 아들 필립에게는 북부요르단이 주어졌습니다. 그렇지만 헤롯이 나누어주었던 나라들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아들들은 아버지 장례보다는 로마의 승인이 더 급하여 아들 셋 모두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로마로 갔습니다. 그런데 헤롯이 다스리던 그 나라는 이스라엘이지만 헤롯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에돔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에돔 사람인 헤롯가문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들들 중에서도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던 아켈라우스는 도덕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아켈라우스가 그의 왕권을 승인 받으려고 로마에 올라간 사이에 비밀리에 그들의 대표자를 뽑아서 로마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가서 아켈라우스 반대운동을 벌렸는데, 로마는 유대인들 대신에 헤롯 아들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로마로부터 왕권을 얻어서 다시 유대로 돌아왔고, 아켈라우스는 유대로 돌아오는 즉시 자기를 반대하던 모든 사람들을 불러서 처참하게 숙청시켜버립니다. 예수님이 이런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유대인을 기억하게 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고 생각합니다. 은총과 평화의 왕을 거부하는 자들이 장차 받을 심판이 어떠할 것인지를 말씀하셨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비유를 들여다보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떠날 때 종들을 불러 은 한 므나씩 주고 돌아오기까지 그것으로 장사하라고 합니다. '므나'는 중량을 재는 화폐 단위인데요, 은 한 므나는 약 100데나리온에 해당하고, 그 당시의 노동자 하루 품삯이 1 데나리온이었으니까 한 노동자가 약 100일정도 일한 임금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이 비유의 내용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와 비슷한데요, 달란트 비유에서는 3사람에게 차등을 두어 5달란트와 2달란트와 1달란트씩 맡겼습니다. 달란트를 다르게 맡겼다는 것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와 재능이 다름을 의미하고, 본문의 비유에서는 10사람에게 균등하게 1므나씩 맡겼으니 각 사람의 인생에 주어지는 기회가 공평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인생이 똑같이 한번 주어지는 기회이고, 각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균등하게 받은 사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주님으로부터 하나님나라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고, 불의한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 일을 위해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다양한 재능과 은사를 받았고, 받은 바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크고 작은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 15절 이하를 보면 귀인이 왕위를 받아 돌아와서 종들에게 어떻게 장사했는지 물어봅니다. 주님으로부터 똑같이 한 므나를 받았는데, 종말에는 많이 남긴 종, 적게 남긴 종, 그리고 전혀 장사를 하지 않고 남기지 않은 종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여기서 열 배를 남기고 다섯 배를 남긴 사람이라는 것은 귀인이 왕위를 받아서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명을 따라 충성스럽게 일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온 종은 주인에게 갖은 핑계와 변명으로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는 "내가 그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나이다. 주께서 엄한 사람이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나니 주께서는 맡기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시나이다"고 말합니다. 그 종의 생각에는 한 므나로 땀 흘리며 장사하여 이익을 남겨봐야 결국 다 주인이 가져가는 것이며, 잘못해서 손해를 보았다면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했으니 정해진 기한 안에 자신의 최선을 다하도록 임무를 맡았던 것입니다. 귀인은 종에게 한 므나를 맡기면서 장사하라는 명령했는데 그 종은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숨기려 하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그 종은 주인에게 책망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있는 것조차도 빼앗겨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도 기한이 많이 남은 것 같지만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야하니까,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나님나라 안에서 하루하루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는 교훈입니다.

2천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초림이고, 하나님나라의 시작이면서 이 땅의 삶으로 보면 종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임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고,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하나님나라의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관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도 씨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나라의 시작이고, 열매는 하나님나라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고, 본문에 나오는 열 므나 비유도 시작과 종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미 한 므나씩 받았고, 예수님이 왕위를 가지고 돌아와서 우리 각자가 얼마나 남겼는지 물어보시는 때가 올 것이고 그때에 하나님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삶과 활동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부분적으로나마 이미 선물로 받았고, 부분적으로나마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동시에 제자들은 하나님나라를 확장해나가야 할 사명도 받았는데요, 그 사명을 이행하려면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사랑을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구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하고 거룩하신 성품을 따르면서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결론적으로, 하나님나라를 확장해 가야만 하는 사명을 받은 자들에게, 책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하는 말씀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비유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반대로 불의를 행하는 자들과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권력자들과 가진 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약한 자들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빼앗아 가지려는 강한 자들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과 반대로 미움과 괴롭힘과 싸움만을 일삼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지금 이 세상은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 그런 세상이고, 오래 참고 기다리시느라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 않은 때입니다. 이 불의와 부조리의 세상에는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왕이 되시는 것을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힘의 논리로 하나님의 공의를 믿는 자들로 힘이 빠지게 만들고, 낙심하고 두려워하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세상의 일에 바쁘고 주님이 맡기신 일은 등한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물들어 하나님나라에 보물을 쌓아두는 대신에 이 땅에 재물을 쌓아둘 창고를 확장하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지요?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요, 우리의 거룩한 행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며 우리 안에 성령님을 모신 성전으로서의 삶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은총을 입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저희들 불의하고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 잠시 사는 동안, 하나님나라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성품을 닮아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저희를 도와주셔서 날마다 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며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이끌어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주님을 경외하지 않고 인간의 헛된 욕망을 쫓아가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5/08 [20:35]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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