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함께하시는 보혜사 성령
[다락방 기도] 요한복음 14:15-26
 
김영철

프린스턴대학의 워필드교수는 칼빈을 성령의 신학자라고 부르며, 신학에 대한 칼빈의 위대한 기여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교리라고 말했습니다. 워필드는 죄와 은총 교리가 어거스틴에게서, 이신칭의론이 루터에게서 온 것같이 성령론은 칼빈에게서 왔고, 칼빈의 저서 '기독교 강요'는 구원을 성취하시는 성령에 관한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와 '성경주석'에서 삼위일체론을 논하면서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이시나 삼위의 각자는 어떤 특성에 의해 구별된다고 했습니다. 삼위일체의 3위는 본질적인 존재에 있어서는 각 위가 함께 하나를 이루고 있으므로 한 하나님으로 존재하지만, 그들의 인격성과 지위는 서로 다르게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단순하게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 성부, 성자와 동등한 신성을 가지셨음을 강조하면서 칼빈은 성령에 관해 이런 얘기들을 했습니다. "성령은 창조와 우주질서를 유지하시며,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일반 은총의 근원이다. 성령은 믿음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 믿음을 성장시켜, 우리가 믿음으로 천국에 가도록 인도한다.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인간에게 믿어지게 되고, 그 결과 믿음이 생겨나고 거기에서 회개가 가능하게 된다. 회개에서 생기는 열매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삶의 거룩함이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성령의 내적 증언으로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그리스도를 인식하게 한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지만, 성령께서 인간에게 악한 의지를 억제하여 선한 행동을 하도록 인도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일생 동안 죄악된 본성을 죽이려고 노력하는데,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이를 주관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신자를 성화시키기 위해서 역사하시고, 신자들은 성령의 주시는 힘을 받아 죄를 이겨나간다."

성령의 영감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해 떠나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고별설교를 하신 것인데요, 제자들을 위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들여다보면 여러 곳에 성령에 관한 말씀이 있는데,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성령이 임하신 것은 예수님이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성령세례를 베푸실 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원자이심을 증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 이사야 11장에 기록된 메시야에게 성령이 강림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과, 하나님아버지가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심을 알려준 사건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인 예수님을 통하여 메시야 시대가 도래한 것을 시사해 줍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위로부터 나는'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게 됨을 말씀했습니다. 즉 죄인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어 참된 제자가 될 때 성령의 역사로 그의 속사람에게 마음과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중생입니다. 따라서 중생은 인간 자신의 노력이나 다른 사람의 영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사역이며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로 우리를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약속

요한복음 13장에서 16장까지를 예수님의 '다락방 강화'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날 밤 열한 제자들에게 주신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하나님 나라의 약속, 기도 응답의 약속,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장 큰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시겠다는 약속도 담겨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령에 대한 말씀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는데요, 그 배경을 먼저 살펴보면 본문 바로 앞장 말미에서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질문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별설교를 들으며 예수님이 자기들을 떠나간다고 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 수제자 베드로도 알지 못하여 묻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따라가겠다고 공언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베드로가 자신을 세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고하셨지요? 그리고 14장의 앞부분에서는 제자들을 남겨두고 예수님이 어디론가 떠나실 것이라고 하시며, 아버지의 집에 가신다고 하시니까, 제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마가 "주여,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빌립 또한 예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요,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간다고 하신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 근심하고 있는 바로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위로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위로는 한마디로, 예수님이 떠나가면 예수님과 같은 역할을 하는 보혜사를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겠다는 것과 떠났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했는데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제자의 길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사랑과 계명이 하나이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떠나신 후 남아있을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 주님을 따랐기 때문에 사마리아인처럼 진실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데에는 무능했습니다. 이를 아시는 예수님이 본문 16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제자들을 떠나시지만, 보혜사로 오시는 성령을 통해서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위로와 약속의 말씀입니다. 사랑에 무능한 제자들이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보혜사는 위로자 또는 협조자를 의미하는데요, 곤경에 처한 사람 곁에서 그의 친구가 되어주며 그가 일을 감당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보혜사는 우리의 모든 일을 아버지처럼 돌보시는 성령이시고, 우리 믿는자들 안에서 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구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사랑을 구하는 자는 사랑하기 힘든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는 예수님이 보혜사의 역할을 해주셨는데요,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 곁을 떠나게 되면 성령이 그 역할을 대신 해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보혜사 성령의 능력을 입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고, 그 응답으로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제자들이 예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 증거로 서로 사랑해야 하고,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으로는 서로 사랑할 수가 없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니까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본문 17절에서는 보혜사가 진리의 영이시므로 영적인 눈이 어두워 진리를 보지 못하는 세상은 성령을 받지 못하고, 거짓된 세상은 성령을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해 주시는 진리의 영이시고, 예수님이 진리이시니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사실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다음 18절에서는 예수님이 다시 오리라고 말씀했는데요, 불안해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다시 나타날 것임을 약속한 것입니다. 19절에서는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말씀했는데요, 예수님의 재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직접적으로 육신적 삶을 함께 나누는 것과 같은 형태로는 아니지만,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들 가운데 성령으로 함께 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된다는 것과 종말에 영광 중에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을 포함하여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더라도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의 삶에 늘 함께 하실 것이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적 실존을 성령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 제자들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사시는 예수님을 매 순간, 매 시간 체험하며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생명을 얻는 것을 현재적으로 표현하고 제자들이 생명을 얻는 것을 미래형으로 표현한 것은 예수님이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생명의 원천인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아 영생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성령의 오심을 통해 제자들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미래의 시제로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생명을 얻게 된 제자들은 20절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제자들 안에 있게 되어 연합하게 됨을 의미한 것입니다.

21절에는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하여 15절에서 말씀한 것의 주어와 보어를 바꾸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2장에 보면 서기관 하나가 가장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 무엇인지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한마디로 요약하여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대답하셨지요? 여기에서도 예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고, 신앙인에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서는 이인칭 복수명령형으로 되어 있는데, 21절에서는 3인칭 단수로 되어, 보다 일반적인 형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1절에 한 가지 추가된 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구절을 통해 제자들의 예수님사랑이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는 조건이라는 것을 말씀하려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예수님이 떠난 후에도 아무 걱정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아버지도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고 예수님도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복을 누리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이고, 그 비결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계명에 따라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22절에서는 가룟사람이 아닌 다른 유다가 "주여, 주님은 왜 세상에는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고 저희에게만 나타내 보이시려고 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세상사람들과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데, 제자들만 알아보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한 것입니다. 유다의 이 질문은 성령의 약속과도 연관시킬 수 있는데요, 성령을 주신다는 말은 예수님이 영적으로 함께 하신다는 뜻이고, 세상사람들은 성령을 보지 못하고 제자들만 보는 것입니다. 영적 실존인 성령은 오직 믿는 이들과만 관계가 있고 세상사람들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세상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 세상사람들은 성령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게 강림하시기 때문에 영적 눈이 열리지 않은 세상사람들은 성령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23절과 24절에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따라서 하나님아버지도 그를 사랑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성령이 오셔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고, 이끄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사시는 것이고 내 몸은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성령을 통하여 성화가 진행되면서 나의 육적인 욕망들이 극복되며 나의 삶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본문 바로 다음에 성령님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는데요, 성령님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모든 교훈을 가르쳐 알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상황에서 성경말씀이 생각나거나 새로운 깨달음이 있으면 성령님이 하신 일이고, 예수님말씀에 대한 기억과 깨우침은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역사

우리는 지난주일부터 시작된 성령강림절을 지키고 있는데요, 성령강림절은 성탄절, 부활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삼대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강림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본문의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2장에 예수님의 십자가처형 이후 처음 맞는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그때부터 성령의 역사가 전개되어나갑니다.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는 바로 성령의 역사이고, 오늘도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의 계명을 일깨워주시며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따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우리 믿는 자의 삶에서 때때로 무력감에 빠지게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사랑의 계명 앞에서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 같은 부담감마저 느낍니다만,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하며 살겠다고 마음으로 원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슬픔에 빠지는 때도 있습니다만, 성령께 간구하면 새힘을 주실 것입니다. 쉬지않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사랑을 생각하게 하시며 무력감에 빠진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사랑의 능력을 은사로 주시며 격려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셨으니 우리가 그 은혜를 깨닫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성령께 간구하면 회개할 마음을 주셔서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변화하게 만드시고, 이 죄악의 세상을 이기며 거룩하게 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성령강림 절기에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옛사람이 죽고 새 생명으로 거듭나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며 성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저희가 이 땅에서 변화된 삶을 살게 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간구하며 사랑의 삶을 다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은총을 내려주셔서 주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성령의 신비스러운 체험을 갖게 하시고 교만한 마음, 사랑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세계 곳곳에서 자연 재해 때문에, 전쟁과 테러와 폭력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고, 재물과 권력에 탐닉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 구원해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6/15 [18:02]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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