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해피아·군피아
그들만의 ‘피아 공화국’
 
이시백
‘피아’라는 말이 유행처럼 나돈다.
정부기관의 요직을 차지한 특정 출신들이 독차지하여 전횡을 일삼는 데서, 이탈리아 시칠리의 범죄조직을 일컫는 마피아에서 유래된 신조어들이다.

재경부 등의 금융 관료들이 돌아가며 알짜배기 자리들을 차고 앉아 온갖 특권을 누리는 모피아부터,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해경 출신 인사들의 해피아,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원자력을 다루는 기관의 원피아, 국가 안보를 책임져야 하는 군 내부의 핵심 요직들 간의 뒷거래가 문제가 된 군피아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피아’ 공화국인 셈이다.

대체로 이런 ‘피아’들이 등장하게 되는 요인은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인·허가권이나 외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전문성이 포진되어 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법이 정한 테두리를 넘어서 편법으로 행사할 때 얻어지는 떡고물과 특혜를 자신들끼리만 누리려 하는 욕심이 수많은 피아들을 배태하게 한다. 피아들은 법령이나 감시를 무력화하기 위해 대형 로펌이나 감독기관과도 유착관계를 맺는다. 부적절한 이종교배를 통해 이들은 막강한 위력을 지닌 괴물로 진화한다.

특정한 자격이나 제한된 출신을 배경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구축한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인사와 특혜, 사리를 취한다. 학연이나 지연을 통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필요하다면 직책이나 검은 돈으로 매수하기도 한다. 달콤하고 편한 길을 놓아두고, 외롭고 거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관료들이 얼마나 될까.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사업(EWTS) 비리 의혹이 제기된 무기중개업체 일광공영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3월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돈암동 일광공영 본사에서 수사관들이 본사 건물에서 압수한 금고를 차량에 옮겨싣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감독기관과 유착, 막강한 괴물로 진화
외려 그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앞다투어 노력하고 충성하며 ‘검은 카르텔’의 일부가 되기를 학수고대한다는 게 현실이다. 피아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하기 위해 해당 분야의 정점에 있는 인물을 우두머리로 삼고, 이를 통해 유력 정치인이나 사법부의 검사나 판사까지 끈을 대게 된다.

피아의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무력화시키고, 국가와 국민보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온갖 편법과 비리를 벌인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 매력적인 리그를 유지하기 위해 요직의 관료뿐만이 아니라 인사권자, 제도와 법령의 권한을 지닌 장관, 정치인, 판사와 검사들마저 고문이나 자문위원 등의 명분으로 모셔 온갖 특혜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른바 ‘전관예우’라고 불리는 편법은 안면과 연고, 출신과 지연 등을 동원해 법령을 임의로 주무르며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들을 견제해야 할 고위관료들은 퇴직 후에도 고문이라는 관계로 끈끈한 결속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이 지녔던 왕년의 직위와 안면을 이용해 현직의 후배들에게도 검은 유혹의 손을 내미는 영업사원이나 브로커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사회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판사나 검사, 대법관들마저 로펌을 이용해 제 편으로 끌어들이니, 이들이 무서워할 상대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들은 자신들이 갖는 전문적 지식이나 정보를 통해 국민과 정치인, 심지어 대통령마저 자신들의 손안에서 공깃돌 놀리듯 주물러댄다.

외환은행을 헐값에 론스타라는 사모펀드에 팔아넘기기까지 있었던 모피아들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이다. 대형로펌과 정부 관료, 금융 관료들이 똘똘 뭉쳐 벌인 ‘화려한 파티’는 가히 현란하기 그지없다. 자산 가치 62조원에 달하며, 정부의 혈세가 들어간 국민의 금고 격인 은행을 단돈 1조4000억원에 팔아넘기며, 4조7000억원의 이익을 먹고 튀더니, 그걸로도 모자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5조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ISD 소송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들을 견제해야 할 금융감독원이나 법령은 어떻게 무력화되었을까. 일차적으로 IMF 외환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정치인과 이를 증폭하고 악용한 모피아들, 법의 틈새를 악용한 대형포럼이 똘똘 뭉쳐 벌인 호화로운 파티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펴낸 졸작 <검은 머리 외국인> 속의 한 대목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피아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모피아?”
“아, 재경부에서 힘깨나 쓰던 것들이 똘똘 뭉쳐서 나와바리 관리하는 거 말여.”
“네미, 조폭두 아니구 공무원들두 나와바리가 있나베.”
“검사부터 판사, 의사, 변호사, 사자 들어가는 것들은 허다 못해 촌 핵교 교사들에, 면사무소에서 인허가 도장 눌러대던 동서기 주사들까정 전관예우라는 게 있는 거 몰러?”
“변호사까지는 알겄는디, 교사는 뭐여?”
“아, 퇴임 후에 애덜 수학여행 가는 여관방 영업부장 노릇허잖여?”
“네미, 개털들만 하염없이 쓸쓸허구만.”
“세금 걷던 국세청 것들이 낭중엔 소주 병뚜껑 회사루다 가는 게 뭔지 알어?”
“진로 회사라믄 몰라두, 병뚜껑은 뭐여?”
“아, 병뚜껑으루다가 세금을 따지잖여.”
“말하자믄 쁘로카 노릇을 허는 거네.”
“쁘로카라구 허믄 그것덜이 기분 나빠혀. 로비, 로비스트라구 혀야 혀.”
“로비구 갈비구 간에, 네미, 드런 놈덜, 술맛 떨어지네.”

무기장사꾼으로 전락한 군피아

이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폐해는 군피아다. 보안과 기밀을 앞세워 그들만의 지위와 배를 불려온 군장성과 방산업자와 무기상들의 연결고리는 치명적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안보 위기를 부추기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면서도, 그들은 북한의 전력에 비해 열세라는 점을 뻔뻔스럽게도 입에 달고 지낸다. 그럴 때마다 전쟁의 참화를 겪은 바 있던 이 나라의 국민들은 제 허리를 졸라매며 국방비라면 아낌없이 내주어 왔던 것이다. 북한보다 37배나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도 여전히 열세를 강조하는 이 나라의 군피아들은 이를 앞세워 고가의 무기들을 사들였다. 국방비의 낭비도 문제지만, 막상 이들이 사들인 무기들이 부실한 것들로 드러난 방위사업의 비리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전시에 사용할 무기라는 점에서 이들의 비리는 거의 반국가적이며 이적행위나 다름없다. 방위사업에서 드러난 군피아들의 비리야 말로 보수정권이 정적이나 반정부 시민들에게 비장의 카드로 꺼내온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마땅할 일이다.

피아들의 잔치를 담장 너머로 바라본 국민들은 어떠했는가. 막상 피아들의 문제가 드러나면서도 국민들의 반응은 의아할 정도로 차분하고 무심하다. 제 주머니에서 나가는 담뱃갑 몇 푼에는 발끈하면서도, 막상 4조니 7조니 하는 나랏돈의 손실에 대해서는 남의 일처럼 여기는 국민의 정서를 악용한 것일까. 사모펀드가 먹고 튄 4조7000억원의 돈과 ISD 소송에서 질 경우 지불해야 할 5조원의 돈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결국 세금으로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훑어가게 될 것이다. 안보라면 부동자세부터 취해 온 국민들은 김수영의 시처럼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한다면, 그것은 피아들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이상적 국가가 될 것이다.


[ 이 기사는 주간경향에도 실렸습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5/06/15 [18:13]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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