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경외하며
[다락방 기도] 잠언 3:1-7
 
김영철

여기 미국에서는 지난 수요일 저녁에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흑인교회에서 교인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하던 중에 총기사고가 발생하여 9명이 사망했지요? 21세의 백인청년이 과거에 노예해방운동에 참여했던 이 역사적인 교회에서 무고한 흑인들을 죽였다는데, 인종문제가 다시 미국사회에 갈등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메르스 전염병이 한달이 되었는데 이제 한 풀 꺾이고 있고 이번 주가 고비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메르스 탓에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일부 교인들은, 하나님이 우리가 저지른 죄 때문에 이런 무서운 질병을 내렸다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와 교회가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를 막지 않고 있으니,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교회가 앞장서서 음란과 불의의 죄악에 대한 회개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약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다윗왕권 말기에 전염병으로 죽은 자가 7만 명이 되었고, 온 이스라엘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다윗왕은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회개했고, 그러자 여호와의 진노가 멈추고 재앙이 그쳤습니다. 메르스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주장에 대해 다른 교인들은 이런 인과응보적인 생각은 아직 신앙적으로 미숙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편익을 위해 신을 동원하는 일이야말로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하나님은 지금 고통받는 그들 속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38년을 함께 산 아내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녀의 손을 잡아줄 수도 없는 남편과 가족들의 아픔을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우는 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이들과 함께 웃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나님의 법

야고보서 4장에 보면,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죽음이나 고통을 보면서 비방하거나 판단하기 쉬운데요, 비방이나 판단은 하나님의 법을 비방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의 법인 율법의 핵심은 사랑이고, 형제에 대한 비방과 판단은 하나님의 법인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창조주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남을 판단하며 재판관으로 행세하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것이고,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이웃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하나님이 함께 살아가도록 주셨고, 인간의 의무와 책임은 언제나 사랑과 순종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과학적인 두뇌로 위대한 미래를 계획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때와 기한과 장소와 일의 선택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고, 아무도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자랑하거나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주어진 상황에 겸손하게 충성해야 마땅하고, 한계와 부족함을 고백하며 어린아이처럼 주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행세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죽음과 아픔을 보면서 나도 내일 죽을 것처럼 살면서 허탄한 자랑과 탐욕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5천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는 기적을 예수님이 베푸신 얘기가 나옵니다. 그 기적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 마을로 가도록 재촉을 하셨고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는데 갑자기 몰아치는 돌풍으로 인하여 배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해질 무렵에 배를 타고 출발했던 그들이 밤 사경, 우리 시간으로 새벽시간에 바다 가운데서 여러 시간을 맴돌며 초죽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산 위에서 기도하고 계시던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찾아 오셨고 배에 오르니 즉시 바람과 물결이 잔잔해졌고 제자들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기술문명을 자랑하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이 만드신 대자연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니 인간은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존귀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만,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존재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나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아갑니다만,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 눈앞에 보이면 불안해하고 무서워하는데요,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도 인간의 한계에 부딪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바다에 익숙한 제자들이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사경이 되어 두 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그들을 구해주셨습니다. 5병2어를 보고도 고백이 없었던 제자들이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실 때 비로소 주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주님 앞에 부끄러운 것들을 회개하면서 주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오늘 본문에서도 인간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말씀이 나옵니다. 잠언의 가르침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요, 1장에서 9장까지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가르침이고, 10장에서 31장까지는 실용적인 처세에 대한 지혜와 훈계입니다. 이 가르침대로 따르기만 하면 누구든지 삶의 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매우 낙관적인 행복론이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후반부에 나오는 인생의 행복도 하나님의 은총과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잠언은 제일 먼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충고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잠언 전체의 핵심이고 구약시대에도 백성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주제였습니다. 타락 이후로 인간의 이성을 통한 선악의 판단은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분별력을 회복시키는 근간입니다. 1장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임을 말씀하면서 시작한 것도 잠언의 지혜가 세속적인 성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잠언을 요약해보면 창조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거기에 순응함으로써 창조주의 경륜을 따르게 되고, 하나님이 지혜로 세상을 지으셨기에, 세상을 잘 관찰하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기에, 삶의 모든 영역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은 바로 지혜의 소유임을 제시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했고 2절에서는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지킬 때 하나님이 장수와 평강의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나그네라고 했으니,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사는 장소가 아니라 잠시 머물렀다 가는 여관과 같은 곳입니다. 나그네에게는 길을 잘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인생이 가는 길에는 사는 길이 있고 죽는 길이 있고, 영생의 길이 있고 멸망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길이 가장 좋은 길이고 가장 복된 길인지를 인간은 알지 못하고 길을 계획하시고 만드신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 길을 안내하는 하나님의 법과 명령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하나님은 복된 길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뜻을 잘 배우면 인생을 의미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말씀을 늘 사모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기본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를 움직여 나가시는 것도 세상 흘러가는 것도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서 스스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듣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결정하게 하는 인격적인 존재로 살아가면서 자기 일생은 자신이 책임을 지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과 명령에 따라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불의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하나님이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불의와 부조리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악인이 받아야 할 보응을 의인이 받고, 선인이 받아야 할 보응을 악인이 받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조리들은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 지배하는 하나님나라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완성될 것이며,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지킨 자들을 그 시민으로 부르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에서는 "너는 마음을 다 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했는데요, 인간능력의 한계를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며 자기고집대로 살면 그만큼 인생을 허비하게 되고 헛된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계획을 내가 세우고 모든 일을 내 노력으로 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다음 본문 6절에서는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인도 하시리라"고 말씀했는데요, 모든 상황과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식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한계를 두시고 우리를 다스려 나가신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한계를 두시는 목적은 사람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한계에 대해 우주질서 자체에서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드신 분이 있고 창조주가 한계를 만드심으로 온 우주를 다스려 나가신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한계상황에서 좌절을 느끼게 하고 절망에 빠진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스스로 찾고 구하여 인정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한계 자체만을 볼 때는 비참한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아무 의미없이 그렇게 만드신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인생을 의미있게 하려고 한계를 두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사람들이 말씀보다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나는 것이 형통의 비결이라는 진리입니다.

본문 7절에서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라고 말씀했는데요,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라는 것이고 악을 떠나라는 것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교만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할 때는 언제나 거룩함을 쫓으라는 뜻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우리의 전인격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우리를 주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경외하는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려 나가시며 우리의 생각을 바로 잡아 놓으려고 하시고,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며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아님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어떤 행동을 할 때 하나님의 반응보다 사람의 반응을 더 의식하게 되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 오직 하나님의 반응만 의식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염려에서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잠언 8장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있는데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이 우리 안의 죄를 미워하시듯이 우리 또한 죄를 미워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의가 반드시 실현되리라고 믿기 때문에,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보며 낙심하지도 좌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의로운 세상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의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도 주시고 길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종말에 모든 일을 다 심판하실 것임을 믿기 때문에 현세에서 경험하는 슬픔도 아픔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미있는 아버지의 가르침

오늘날 이 세상에는 정의롭게 행해야 할 사람이 불의를 행하고 공평하게 재판해야 할 사람이 부당하게 재판하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무책임한 것을 흔히 봅니다. 악인이 승리하여 쾌가를 부르고 의인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좌절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슬픔에 젖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악인이 잠시 영화를 누릴 뿐이고, 의인이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고난과 역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의 최종승리를 믿고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또한 광야같은 세상을 걸어가면서도, 길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중에도 빛과 능력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을 통해 가야할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악인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승리는 잠깐이고, 결국 진리가 승리하고 의인이 승리할 것이기 때문에 희망 속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서로 사랑하는 대신에 미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얼마나 가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도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마땅히 두려워해야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죄를 멀리 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특별히 아버지의 날을 맞아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다면, 의미있는 아버지 날이 될 것입니다. 신명기 31장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고 말씀했지요? 시편 128편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도 있지요? 하나님이 우리 모두 축복하셔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서 온 가정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오늘 저희들이 아버지주일을 지키면서 자녀들에게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것이 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임을 깨우쳐주시니 감사합니다. 자녀들에게 가르칠 뿐만아니라 우리자신도 주님의 법과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본을 보이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서 잠시 사는 동안에 권력과 재산을 추구하면서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셔서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도록 이끌어주시옵소서. 세계 곳곳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김영철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상사 미국 주재원 생활을 거쳐, 미국 뉴저지 드루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교회와 한인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하고, 현재는 Spirit Filled Church 담임목사를 맡고 있습니다. youngckim48@gmail.com
 

기사입력: 2015/07/03 [23:30]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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