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 혁신과 퇴행 기로에 서다
 
이시백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지난해 5월, 상대 후보인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의혹을 제기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았다.

위법이 있다면 응당 이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하며, 검찰이나 법원에서도 명명백백하게 위법사실을 밝혀낼 소임이 있는 건 지당한 일이다. 다만 그 법적 잣대가 공정한 것인지, 이른바 진보진영의 교육감에 대해 흠집을 잡아내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건 아닌지 자못 의문이 든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고승덕 후보 영주권 의혹 제기와 관련해 1심은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만약 항소심에서도 당선무효형을 받는다면, 서울시 교육청은 또다시 수장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지난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조희연 후보(사진 왼쪽)에게 진 고승덕 후보(사진 가운데)와 문용린 후보(오른쪽)가 선거 후인 6월 26일 “서울시 교육을 위해 협조하겠다”며 손을 맞잡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김무성 찌라시’와 대비되는 검찰 수사
문제가 된 조희연 교육감의 발언을 기사에 실린 그대로 옮겨 보면, “고승덕 후보가 두 자녀를 미국에서 교육시켜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고, 고 후보 자신 또한 미국에서 근무할 때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제보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 발언 때문에 조희연 교육감은 상대 후보에 관해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지난해 12월 기소돼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조희연 교육감 쪽에서 보자면 허위사실을 만들어 유포한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이 있다는 제보를 전한 것이며, 선관위가 쌍방에게 경고로 그친 데다가 경찰도 무혐의로 종결한 사건에 대해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판결이 과연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국민 참여 재판에서 결정된 사항이니 법원은 어느 정도 홀가분할 수 있겠지만, 서울의 1000만 시민이 선택한 교육감을 기소한 검찰의 의도가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법원도 이런 점을 고려해 조 교육감이 허위사실을 만들어 유포했다는 점보다는 제보된 내용에 대해 충분히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전달한 점을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이 부분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비밀 누설과 관련한 ‘김무성 찌라시’ 논란이다. 대선 당시 선거대책본부 총괄본부장이었던 인물이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발언을 ‘사실 확인도 없이’ 전달한 사실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교육감 선거보다 대선이 더 미미한 것이라 그런 발언의 위법성을 가벼이 본 것일까. 아니면 ‘출처를 알 수 없는 찌라시’에서 본 내용은 ‘사실 확인도 없이’ 전달해도 위법이 아닌 것인가.

만약 조희연 교육감이 ‘찌라시’에서 본 내용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라고 했으면 검찰은 어찌했을까. 심히 궁금해 잠이 안 올 지경이다.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만약 항소심에서도 당선무효형을 받는다면 서울시 교육청은 또다시 수장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교육청 업무의 공백을 걱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서울시 교육청이 그동안 공을 들여 추진해 온 혁신적인 교육정책들에 심대한 차질이 생긴다는 걸 뜻한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낙마에 이어 조희연 교육감까지, 이른바 진보 교육감에 대한 거듭된 중도 탈락은 법리적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개운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육감 선거에서 서울시민들은 진보적인 교육정책을 내건 조희연 교육감을 선택했다. 곽노현, 조희연으로 이어지는 진보 교육감들의 주요 정책은 보수적인 후보들의 정책과 확연한 교육적 차별성을 갖고 있다.

이른바 보수진영의 교육감 후보들이 내건 정책들은 ‘다양성’을 앞세운 교육의 서열화와 경쟁체제에 있다. 초등학교에 일제고사를 부활시키고, 자사고와 특목고를 비롯해 이른바 명문학교를 앞세운 학교 간 경쟁과 서열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학부모에게는 무거운 사교육의 부담을 주고, 학생들에게는 과중한 입시경쟁과 과도한 학습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경쟁을 통해 1%의 인재가 나머지 국민을 먹여살린다는 왜곡된 교육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보수 교육정책의 폐단은 이미 입시와 학력지상주의에 희생된 아이들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절규를 외치던 시절부터 그 문제점을 드러내 용도폐기될 정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제조업 시대에나 통용될 전체주의적이며, 결과 중심의 경쟁적 교육정책들은 이제 다양성과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고도 첨단정보화 시대에 통용될 수 없다.

진정한 ‘다양성’은 학교와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아이들이 지닌 잠재적 소양과 개성을 이끌어내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감을 갖는 건강한 공동체의식으로부터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밥을 먹는 것마저 부모의 가정형편에 따라 차별을 두고, 일제고사와 온갖 시험을 동원해 소수점 자리까지 서열을 매겨 ‘다양하게 차별하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 첨단시대에 맞는 것인지는 이미 선거를 통해 학부모와 시민들에 의해 선택된 바 있다.

‘교육을 잡으면 영원히 집권할 수 있다’
조희연 교육감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시민이 선거를 통해 선택한 교육감을 ‘콕’ 집어 법정에 세우는 것이 과연 법이 지켜야 할 공공의 도리이며, 정의의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어렵다. 만약 그것이 항간에 나도는 우려의 말처럼 어떤 정치적 의도와 불순한 딴죽걸기라면, 이에 따른 서울시 교육의 공백과 정책적 혼란은 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더욱이 수도인 서울시의 교육정책은 다른 지역의 정책 방향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 신중히 결정돼야 할 부분이다.

흔히 항간에 나도는 말 가운데 ‘언론을 잡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지만, 교육을 잡으면 영구히 집권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만,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를 비롯해 교과서를 포함한 교육정책들이 ‘오년대계’로 뒤바뀌는 현실을 보자면 그런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얼마전에 있었던 역사 교과서 논란도 이와 무관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조희연 교육감의 항소심은 서울시 교육청이 그동안 힘을 들여 추진해 온 혁신적인 교육정책을 선택할 것인지, 보수적인 교육정책으로 퇴행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 이 기사는 주간경향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5/09/08 [18:22]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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