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과서’에 반대한다
 
이시백

국정 교과서를 둘러싸고 나라 안이 뒤숭숭하다.

국가가 관장하여 펴내려는 교과서가 역사교과라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의 좌편향적 내용과 부정적 국가관을 트집 잡아 그것을 국가가 관장하겠다고 나섰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적 편향과 국가관에 대한 판단을 누가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국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여당 대표가 할 것인지, 아니면 옷 갈아입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대통령께서 직접 판단의 교지를 내려주실 것인지 자못 궁금한 일이다.

역사의 평가는 역사를 전공한 학자들이 학문적 논의와 연구를 통해 판단할 문제이지, 정치인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5년짜리 통수권을 잠시 위임 받은 대통령이 섣불리 손을 댈 문제도 아니다. 면면히 이어지며 현재진행형인 역사의 기술은 봉건시대의 군주도 함부로 간여할 수 없었으며, 슬쩍 들여다볼 권한조차 없었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역사의 기록들을 뒤집으려는 시도들은 하나같이 폭군이나 독재자에 의해 자행되었으며, 일시적으로는 가능하였지만 끝내 그 시도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이 역사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10월 22일 도서관 앞에 게재된 정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을 유신이 선포된 1972년에 빗대어 1972만 반복해 놓은 대자보를 보고 있다. / 이석우 기자

 

현행 교과서도 국가검정 기준에 따라

그렇다면 어째서 이 민감한 역사교과서라는 논란의 뇌관을 건드렸을까.
교육의 자치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차치하고라도, 다양성을 강조하는 ‘창조경제’의 중심에서 난데없는 ‘국정’ 교과서의 출현은 생뚱맞기만 하다. 노동법을 개악하여 골치 아픈 노동판을 일거에 정리한 이 정권이 내친 김에 늘 뒤통수에 따갑게 매달리던 친일과 독재의 기록마저 말끔히 정리하러 나선 게 아닌가 싶다.

현행 교과서가 지금의 정부가 호도하는 것처럼 좌파 학자와 교사들에 의해 제멋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간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선정한 필진들을 구성하여 다양한 교과서를 만들지만, 여전히 국가 검정의 절차를 밟고 있다. 집필 이전에 국가 검정의 기준이 제시되며, 그 기준과 범주의 테두리에서 만든 교과서들은 제대로 그 기준을 준수했는지를 검정 받게 되어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교과서들은 각 학교마다 구성된 교과서 선정위원회의 민주적 협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행 검정 교과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국정 교과서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다양하고 자율적으로 선정되는 교과서의 내용들이 누군가의 비위를 거스르고, 불편하게 한다는 점이다.
주로 그 쟁점은 친일과 정부 수립 이후의 독재정권에 대한 기술로 집중된다. 이러한 논란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가 근대화를 이뤄냈다”는 뉴라이트의 발언이나 얼마 전에 있었던 ‘교학사’판 역사교과서 파동은 이번 국정 교과서에 담겨질 내용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추측에 부응하듯이, 이번 국정 교과서를 찬성하는 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식민지시대 일제가 쌀을 ‘수탈’한 게 아니라 ‘수출’했다”는 발언은 국정 교과서에 실릴 내용이 대략 어떤 것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어째서 하나도 아니고, 수다한 기존의 검정 교과서들이 국가의 검정 절차와 기준에 따라 만들어졌으면서도 하나같이 ‘부정적’일까. 그것은 필진의 좌편향적 성격보다는 친일과 독재정권의 문제가 역사적으로 ‘부정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국정 교과서의 당위성을 부각하려는 의도겠지만, 한홍구 교수가 오래전에 한 강연 동영상을 어느 종편방송이 온종일 방영하며 문제 삼을 때, 곁두리로 나온 한 패널의 군색한 비판이 기억에 남는다. 그 패널은 한홍구 교수의 강연이 “그 내용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부정적인 것만 부각시켰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마디로 ‘사실’이라는 점은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국가관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의 역사와 국가에 대해 부정적인 기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건전한’ 국정 교과서는 어떠했을까.

건전한(?) 국정 교과서의 씁쓸한 추억


멀리 갈 것도 없다.
한 자 틀릴 때마다 종아리를 한 대씩 맞으며 국민교육헌장을 외운 국정 교과서 세대로서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굳게 믿고 살았던 나는 정인숙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권력 중심부 인물들의 추문이나, 채홍사를 두고 안가에서 여대생을 옆에 끼고 국민에게 금지된 양주나 마시던 권력자의 비보를 접할 때, 현대사에 대한 부정적인 기술이라고는 전혀 없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만을 암송하고 살아온 세대로서 ‘긍정적 국가관’이 가져다준 혼란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치 컸다.

지금 정권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국론 분열이니 소모적인 정쟁을 부추기면서도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이는 의도는 무엇일까. 총선을 앞둔 보수층의 결집을 노리려는 정략적 판단이라는 말도 있지만, 친일과 독재의 기록을 껄끄럽게 여기는 이들의 숙원을 실현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근현대사의 치부로 남겨진 친일과 독재의 ‘사실’들을 껄끄러워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게 누구든 역사란 껄끄럽고 부끄럽다 하여 지울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손을 대는 순간, 그것은 역사를 넘어 권력자를 위한 ‘권비어천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설령 힘과 나팔을 동원하여 제 입맛에 맞는 역사를 기술한다 해도 그것은 오래지 않아 또 다른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대체로 역사를 뒤집으려는 시도는 권력자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이전의 치부를 숨기거나 왜곡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논란의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첨예하게 놓여 있다. 공교롭게도 그 따님이 대통령으로 있는 시기에 국정 교과서의 강행은 곱게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복권을 위해서다.”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내정된 김재원 의원이 2012년 9월 23일에 예정된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의 취지를 설명하던 중에 한 말이다.

“아버지께서 평생를 바쳐 이루어 놓은 나라의 경제가 지금 병들어 있으니 이것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최대의 꿈”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며 내어놓은 말도 요즘 들어서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만에 하나라도 국정 교과서의 논란이 대통령의 가족사 관점에서 다뤄져선 안 된다. 또한 ‘국정 교과서’라는 말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된다. 국민의 뜻이 담겨 있지 않은 국정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은 ‘정부=국가’라는 1970년대식 독재자의 통치술을 되풀이하려는 발상에 불과하다. 일정기한 권한을 위임 받은 정권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만들려고 한다면, 국정 교과서라는 말보다는 ‘정권 교과서’라고 함이 옳다.
 
[ 이 기사는 '주간경향'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5/11/04 [13:28]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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