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확한’ 역사학자의 나흘
 
이시백

 

국정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 가운데 흥미로운 캐릭터가 눈에 띄었다. 역사학회를 비롯하여 역사학자 대부분이 집필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가운데 홀연히 등장한 ‘초인’이 있었으니 최몽룡이라는 분이시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확정 발표하던 11월 3일, 대표 집필진으로 소개될 때까지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라는 고수의 존재는 미미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법 개악에 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들이민 국정 교과서 논란을 놓고, 대부분의 국민과 역사학자들이 반대하는 그 책을 과연 누가 집필할 것인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다양성이 중시되며,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이 시절에 따로 할 일도 많은 국가가 친히 학생들의 교과서까지 챙겨들고 나선 것도 생뚱맞지만, 이런 책을 써보겠다고 나설 ‘용자’가 과연 하나라도 있을지 궁금했다.

이런 기우를 깨우치기라도 하듯,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에 화답하며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이육사의 시 ‘광야’)있었으니 최몽룡 교수셨다. 몇 년 동안 은거하다가 어지러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절대신공 고수의 언행은 가히 범인의 수준을 훨씬 웃돌았다.

이 분이 강호에 출현한 동기를 밝힌 대목이 우선 눈을 끌었다.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국정교과서 집필진에서 사퇴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11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자택으로 들어가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저는 1988년부터 2012년까지 거의 24년을 교과서의 사실 생각을 많이 해 왔고, 그리고 이제 2012년부터 그해가 정년퇴임한 해죠. 지금까지 검인정 교과서로 많이 운영이 돼 왔는데, 저한테는 한 만 3년간의 공백이 있었던 거죠.”

한마디로 이분은 자신이 교과서 고수인데, 잠시 강호를 떠난 동안 교과서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절대고수 체면에 먼저 나설 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 가장 먼저 (나에게) 연락했을 거다. 내가 구차하게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다. 국편에서 부탁을 해야 할 입장이다.”

“오자만 걱정하는” 교과서 전문가
다급해진 ‘국편’이 ‘가장 먼저’ 모시려 하니, 마지못해 응해 주셨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그럼 이분이 보시기에 자신이 떠난 동안의 교과서는 어떠했는가.

“문제는 (집필자의) 급이다. 집필자 대부분이 고등학교 선생님이라고 들었는데, 고등학교 선생님이 쓰면 안 된다. 요즘 문제됐던 것도 그런 게 아니냐. 그건 곤란하다. 옛날 국사교과서를 쓰던 사람들은 권위가 있던 사람들이다. 지금은 아니라는 거다.”

엎드려 있던 용이 기지개를 켜며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시니, 그 출사의 표는 어떠할까.

“저는 집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고, 또 이제 나이가 들어서 죽기 전에 제가 보완해서 한 200년 후에도 남을 수 있는 책이 됐으면 하는 그런 개인적인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연 고수답게 원대한 말씀이시다. 필생의 대작이 아니라, 사후 200년까지 내다보는 불후의 명작을 논하는 그 웅지를 보라.

이 분의 말씀 가운데 또 다른 구절이 흥미롭다.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정확한 사람이다.”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 이 분이 생각하는 진보는 무엇일까.

“글이 나오면 오자(誤字)만 걱정할 뿐이다.” “삼국사기를 믿으면 진보, 믿지 않으면 보수라고 보는데, 나는 삼국사기를 믿는 사람이다. 내 글은 전부 진보다.”

과연 이 분은 교정전문가가 진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삼국사기를 믿으면 모두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자신의 글이 전부 진보라는 말보다는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라는 말이 그의 캐릭터를 규정하는 데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가 생각하는 ‘정확한 사람’이란 무엇일까.

내가 받아들이기에 그것은 교과서를 만드는 지식기술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흔히 ‘전문가’라고 통칭되는 이 부류의 인물들이 주변을 둘러보면 상당히 많은 시절이다. 지식인이 사라지고 전문가가 득세하는 시절은 어떠한가. 시장주의 측면에서 보자면 학자도 자신의 전공 분야의 기술을 제공하는 지식기술자로 살아가는 게 안온하고 편리한 선택일 수 있겠다.

하종강의 <우리는 무슨 일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책에 소개된 사르트르의 말이 생각난다.

“그(사르트르)가 프랑스 사회에서 전개했던 ‘지식인 논쟁’이라는 게 있어요. 지식인에 대해 정의하기를 ‘자신과 관계없는 문제에 상관하는 사람,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 자신의 학문적 명성을 인간의 이름으로 사회와 기존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

‘정확한 사람’과 ‘올바른 교과서’
수십년 동안 교과서를 만든 지식기술자 내지는 전문가로 자부하며, 스스로를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정확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이 분의 말씀이 자꾸 박근혜 대통령의 ‘올바른 교과서’와 겹쳐졌다.

오로지 오자만 걱정하며 수십년 동안 교과서만 만들어온 이 노학자의 ‘정확한’ 입장이 귀에 거슬리는 건 무엇 때문일까.

학자는 그저 학문만 하고, 학생은 교실에서 공부만 하고,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공장에서 일만 하고… 이런 논리야말로 1970년대 ‘유신의 나라’가 꿈꾸던 이상이 아니었을까. 나라가 어찌 되든 말든, 해고 노동자 수 십명이 목숨을 끊든 말든, 세월호에 탄 무고한 청소년 수백명이 바다에 잠기든 말든, 그저 내가 요리하는 음식만 맛있게, 내가 만드는 교과서의 오자만 ‘정확하게’ 잡아내면 되는 ‘전문가’야 말로 안가에서 시바스 리갈 마시는 정치인들이 꿈꾸는 ‘긍정적인 국가관’이 아니겠는가.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책을 굳이 끌어다 대지 않더라도, 역사를 다루는 학자라면 오자만 정확하게 잡아내는 전문가의 입장보다는 자신의 역사적 소신과 신념으로 “인간의 이름으로 사회와 기존 권력을 비판”할 수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권 교과서’의 바람막이로 등장한 이 노학자의 앞날이 우려되었다. 그가 ‘정권의 요구’에 따라 꼬리를 흔들며 식탁에서 떨어지는 밥 고물이나 주워먹기 급급한 ‘정권의 개’가 될지, 아니면 제 소신에 따라 어떠한 요구도 뿌리친 채 자신의 ‘정확한’ 신념을 지켜나갈지 궁금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만약 그가 얼굴마담 역할을 제대로 못하거나, 주제넘게 얼굴 마담 이상의 목소리를 높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필시 밥상 위의 주인과 부딪치다가 결국 수모를 겪으며 내쳐질 것이다. 한마디로 가마솥에서 삶아지는 토사구팽의 개가 되지 않겠는가. 어찌하였든 개는 개다.

이런 우려대로 이 교과서 전문가께서는 ‘몽롱한’ 언행으로 주인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다가 결국 나흘 만에 ‘성희롱’이라는 오물을 뒤집어 쓴 채 내쫓긴 꼴이 되었다. 평생 동안 역사를 연구해 온 노학자의 노후가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정권의 가마솥을 향해 몰려든 또 다른 25마리의 개들이 어떻게 ‘정확한’ 소리로 ‘올바른’ 역사를 짖어댈 것인지 심히 우려스럽다.
 
[ 이 기사는 '주간경향'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5/11/27 [21:04]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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