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어째서 대통령을 뿔나게 하는가
 
이시백

 존경하는 대통령께서 뿔이 나셨다.
프랑스·체코 순방을 마치고 지난 5일 귀국하신 뒤로 10여일 동안 4차례나 국회를 비난하셨다. 코앞에 닥쳐온 ‘위기’와 ‘대량실업’을 두고도 국회가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일을 제쳐두고” 있는 게 불만이다. 국회를 향해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이셨다. 대통령이 하려는 노동시장 개편 5개 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 활력 제고 특별법 등이 “국민이 바라는 일들”이며, “이 일들을 하는 것이 정치개혁의 출발점”이라고 일깨워주셨다.

우국충정이 새록새록 느껴지는 말씀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 말씀을 되새겨 보아도, 대통령께서 벌써 3년째 경영하고 있는 이 나라에 어째서 ‘위기’와 ‘대량실업’이라는 ‘비상사태’가 닥쳐오게 되었는지 설명이 없다. 세월호 참사처럼 7시간 동안 대통령께서 모르는 새 벌어진 ‘위기’인지, 메르스처럼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든 ‘대량실업’ 사태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북한 탓인지.

 

▲  박근혜 대통령이 12월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국회가 대통령 ‘말씀’ 수행에 급급하다면
말씀이 없으시니, 그저 국민들 입장에서야 이 나라에 닥쳐올 ‘위기’와 ‘대량실업’이 국회 때문으로 들린다. 대통령께서는 이런 국회를 향해 “우리 미래세대에게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지금이라도 실행을 해야 한다”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 않는 국회는 ‘죄’를 짓는 셈이다.

대통령이 하는 일을 거드는 것이 국회가 ‘죄’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길임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대통령께서 한 말씀 내어놓으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총화단결’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국회의 소임임을 모르는 것일까. 이 나라의 국회는 아직도 대통령이야말로 정부의 수반이며, ‘정부=국가’이며, “짐이 곧 국가”인지조차 모르고 있단 말인가.

국가는 태생적으로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존재다. 막강한 권력과 재정을 지니고 있는 국가가 이성을 잃게 되면, 그 무엇도 대항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목에는 여러 겹의 목줄을 매어 놓았다. 우선 국가 기관이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한 삼권 분립의 정치적 목줄과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 권력을 감시하기 위한 언론이라는 목줄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에서도 국가가 괴물로 변한 흔적은 드물지 않다. 제주와 거창, 광주에서의 양민 학살은 국가가 얼마나 무서운 괴물로 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울릉도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아직도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얼마 전 일어난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국가가 여전히 ‘괴물’의 야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들어 국가기관이 시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이니 모욕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한 인격체도 아닌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들은 법리적 해석을 차치하고라도 우선 그 모양새가 야릇하다.

근자에도 음주단속 중인 경관의 팔을 비틀었다는 혐의로 공무집행 방해, 위증죄 등을 동원하여 6년이나 소송에 시달리게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개인이든 국가를 상대로 싸워서 이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의 힘이 커져만 간다. 광우병 쇠고기를 걱정하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구금과 고발이 이어졌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부터, 인터넷에 게재한 글을 문제 삼아 벌인 ‘미네르바’ 소송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에 대한 ‘묻지마 식 고발’과 소송은 재판의 결과와 무관하게 진행된 느낌이 짙다. 먹고 살기 바쁜 시민들을 경찰서와 검찰청, 법원을 오가게 하며 괴롭히는 공권력의 횡포로 보인다.

국가라는 괴물의 목에 걸려 있는 목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와 사법부가 대통령의 표정만 살피면서,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다면 삼권분립은 왜 필요할까. 최근에 대통령에게 밉보여 졸지에 찬밥 신세가 된 집권당의 국회의원이나, 서로가 심복임을 경쟁하는 ‘친박’ 간증의 풍경들은 이 나라에 왜 국회라는 기관이 필요한지를 궁금하게 한다. 목줄 노릇을 해야 할 언론마저 목에 걸린 액세서리 노릇을 하며, 국가 권력이 흘려주는 떡고물에 맛을 들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긴급조치, 계엄령, 비상사태의 추억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장기집권을 위해 국회를 거수기로 만들고, 사사오입(四捨五入)의 편법을 만들어낸 이승만 정권이나,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다고 집권여당의 중견 정치인의 멋들어진 카이젤 수염을 뽑아버린 박정희 정권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회는 그저 대통령이 하려는 일을 거드는 존재여야 한다. 그런 들러리 국회마저 거추장스럽다면, 경부고속도로 만들 듯이 ‘속전속결’, ‘일사천리’, ‘총화단결’로 말 잘 듣는 대의원 몇몇을 뽑아, 체육관에서 결정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훨씬 신속하고 평온한 나라의 풍경이다.

어려서부터 이런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배운 지금의 대통령께서 보자면, 이런저런 이유로 “간절히 바라는 일을 제쳐두고” 있는 국회는 명백하게 ‘죄’를 짓고 있는 셈이다.

노동법 개혁의 입법을 서두르지 않는 국회를 향해 사용된 ‘국가적 비상사태’란 말을 들으며 감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국가 비상사태, 긴급조치, 계엄령…’ 한때 신문이나 방송마다 단골로 등장하던 그 어휘들을 오랜만에 다시 접하는 심경이 황황하다.

그런데 모든 국가기관이 제 할 일을 접어둔 채, 사법부나 국회마저 대통령의 안색을 살피며 ‘말씀’을 수행하기 급급하다면, 이것이야말로 ‘국가적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다. 설마 제 생각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국회를 비난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하고 대화하는 대통령이야말로 “정치개혁의 출발점”임을 모르지는 않으실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가운데 하나인 경부고속도로도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제한하거나, 희생한 결과물이다. 세계 최단의 공사기간을 자랑할 게 아니라, 그만큼 국가라는 압도적인 힘에 찍소리도 못하고 살던 집을 떠나야 하고,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불평을 내어놓았다가 정보기관에 끌려가 죽을 고생을 겪고 난 이들의 희생이라는 걸 돌아볼 시점이다.

강력한 국가란 국민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나라다. 올바른 대통령이라면 복면을 쓰고 외치는 국민이라도 ‘IS’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외침을 향해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뜻에 따르는 국민만이 아니라, 광장에 몰려나와 물대포를 맞으며 외치는 사람들도 국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대통령이라면 “우리 미래세대에게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지금이라도” 자신의 뜻을 버리고,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다.

 

[  이 기사는 '주간경향'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5/12/29 [00:20]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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