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전통보다 힘이 세다
 
이시백

 중국의 윈난(雲南)을 다녀왔다.
과연 ‘꽃 피는 윈난’이라는 말답게 겨울에 만난 윈난의 꽃들은 화사했다. 쿤밍을 거쳐 다리와 리장에 이르는 여정에서 만난 풍경들은 7년 전의 그것과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외제차들로 거리를 메운 도심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고층건물들은 과연 이것이 사회주의 국가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몰라보게 변한 고성의 풍경
주로 내국인 관광객들로 뵈는 리장 고성 골목의 인파도 대단했지만, 호객꾼들의 요란한 차림새와 화려한 물산들로 들어찬 가게들은 이미 인사동 거리의 요란함을 넘어설 지경이었다. 마방들이 말방울을 울리며 한가로이 지나던 고성의 거리가 여행객들로 붐비는 것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7년 전에 찾았던 거리의 풍경과는 무언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인상여강 공연

 


몇 군데 가게를 들르며 그 의문이 풀렸다. 그것은 골목마다 옹기종기 다채롭게 들어섰던 예전의 리장 가게들이 언제부터인가 천편일률의 상품들로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사방가를 중심으로 길을 찾기 힘들 정도로 들어찬 가게들은 다리가 아프도록 돌아다녔지만, 어느 가게나 그 물건이 그 물건이라 별반 새로울 게 없었다. 돋보기를 쓰고 동파 문자로 인장을 새겨주던 할아버지는 간 데 없고, 국적 불명의 북을 정체불명의 소녀들이 온종일 두드리는 가게만 하나 건너마다 들어찼다. 어디를 가나 비슷한 물건들을 파는 한국의 기념품 가게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이 된 것이다. 사지 않고 눈요기만으로도 풍성했던 리장의 가게들이 왜 이리 되었을까.

물으나 마나 돈이다. 잘 팔리는 물건들만 다투어 늘어세우다 보니 옷 가게에서 보이차를 팔고, 북 가게에서 목도리를 내걸어 두게 되었으리라. 다채로움을 잃어버린 리장 고성의 밤은 흡사 홍대 거리를 방불할 정도로 들어선 주점의 호객소리와 음악소리로 뒤범벅이 되었다. 이럴 바에야 무얼 하러 이리 먼 리장을 찾아왔나 후회가 앞섰다.

리장에서 다시 만난 장이머우(張藝謨) 연출의 ‘인상여강’ 공연은 여전히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뒤로 뵈는 위룽쉐산(玉龍雪山)에는 눈이 없었다. ‘인상여강(印象麗江)’의 감동의 절반은 천혜의 무대가 되어 주었던 웅대한 설산이었건만 막상 눈이 없는 설산의 배경은 허전하기만 했다. 중국 정부에서도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설산 앞에 물을 가둬 두는 거대한 저수지를 엄청난 규모로 파고 있었다. 그곳에 가둬둔 물들이 증발하며 구름을 일으켜 눈을 내리게 하려 한다는 소리도 있지만, 눈이 부족한 설산에서 흐르는 물의 양이 줄며 당장 리장의 수로들은 눈에 띄게 수량이 줄고 더러워졌다. 그마저 이제 파기 시작한 저수지마다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 심각한 식수난에 부딪칠 게 자명한 일이었다. 국가가 벌이는 역사에 일부 인민의 고통쯤이야 희생을 감수함이 마땅하다고 여길 게 틀림없다. 나랏일이라는 명분 아래 무수한 마을들이 동강난 채 고속도로가 지나고, 댐을 만들기 위해 몇 개 면이 송두리째 물에 잠기면서도 끽소리 내지 못한 ‘개발의 추억’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았던가.

리장 고성의 점원


이번 여행은 윈난의 모계사회 마을 답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모계사회에 관한 책을 펴낸 선배 소설가를 앞세우고 찾은 루구호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갑작스런 산사태로 도로가 끊기는 바람에 돌아가느라 아홉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루구호의 모수족 마을에선 부족 전통 옷을 빌려주고 사진 촬영을 하는 장사꾼이 가장 먼저 맞이했다. 관광객을 맞이한 현지의 문화해설가는 모수족의 풍습을 설명하는 틈틈이 그들의 뛰어난 은 세공술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태어날 때와 죽을 때만 들어간다는 생사문 앞에 덮어 놓은 보자기를 펼쳐 그들의 뛰어난 세공술로 만든 은제품들을 팔았다.

16년 전에 단신으로 찾은 루구호에서 만났던 모수족 집을 찾던 선배 소설가는 술집과 유흥업소로 가득 찬 마을의 풍경을 접하며 울 것처럼 크게 실망했다. 거무산 아래 한적하게 펼쳐진 호숫가를 16년 동안 그리워하다 그 먼 길을 되찾은 노 소설가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다행히 수소문 끝에 만난 16년 전의 지인은 호숫가의 경관 좋은 곳에서 여행자들을 위한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너무나 가난해서 지니고 있던 옷까지 다 벗어주고 헤어졌었다는 모수족 여인은 “예전처럼 가난하지는 않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나시족이나 백족을 비롯하여 윈난의 소수부족들이 이미 모계사회의 원형을 잃어버린 탓에 아직도 외형적으로 모계사회의 이상을 지니고 있는 모수족이 특별해 보이지만, 호수로 고립되어 전쟁과 외부의 영향을 덜 받은 지형적 유리함의 덕이 아닐까 싶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모수족 남자들이 관광객들과 어깨를 둘러메고 원무를 추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과연 그들은 지금 행복한지 묻고 싶었다. 모계사회의 전통마저 돈벌이에 앞세운 그들이 맞이할 행복은 무엇일까.

그런 의문과 함께 자본은 전쟁이나 지형보다 더 힘이 세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착잡한 동의였지만, 그들이 호숫가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기만을 바라는 것도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장 고성의 가게


국가는 누구를 행복하게 하려는 걸까
이제 사회주의 중국이 ‘돈 맛’에 빠져 본격적으로 개발과 소비에 전 국가적으로 나서게 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우려되는 것은 당장 중국의 앞날보다 그로 인해 파생할 자원의 문제, 환경의 문제, 생태의 문제들이 전 지구적으로 미칠 거대한 변화의 쓰나미였다. 깎아지른 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족(彛族)의 오두막까지 길을 포장하고 전기를 끌어대는 일이야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연장이며, 만민평등의 국가시책이라 하겠으나 그것이 과연 행복한 미래를 이끌어다 줄지는 자못 회의적이다.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라는 국가시책에 따라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을 통해 유례없는 급속 성장과 토목개발의 경험을 몸으로 겪어온 우리의 입장에서는, 과연 세계 굴지의 경제성장이라는 것과 인민의 행복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토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로 통칭되는 1970년대 경제개발의 논리가 일대일로의 국가시책을 밀어붙이는 중국의 현실과 자꾸 오버랩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인민의 입장으로 보자면, 오랜 세월 고유한 자신들의 전통과 관습을 지니고 살아온 윈난의 소수민족들이 자본이라는 한 가지 길로 치달리기보다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백대백로(百帶百路)’의 정책이야 말로 ‘행복의 오솔길’이 되지 않을까.   

 

한 번 겪고도 모자라 다시 앙코르로드로 재방영하려는 1970년대식 개발성장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 걱정까지 하는 비상식의 현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우습지만 그것은 결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이윤의 측면에서 자본을 앞세운 국가가 돈 없는 이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어디 중국만의 일인가. 밀양의 송전탑이나 용산 남일당의 참사가 윈난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모양새로 보자면, 국가가 나서서 하던 일을 자본이 나서서 한다는 점이 다르다고나 할까.

국가는 과연 누구를 행복하게 하려고 있는 것일까. 제대로 된 나라라면 돈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돈이 없는 국민은 국민이 아니라고 보는 비상식의 관점이 문제라 하겠다.

 

 [ 이 기사는 주간경향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6/02/29 [23:06]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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