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말이 전도된 대통령의 고민
 
이시백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시끄럽던 지난 2일에 한 발언이다. 국가 권력의 정점이며, 항간에 ‘십상시’라 불리는 측근 인물들에 둘러싸인 국가 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을 들어야 하는 국민의 심정은 우선 황당하다.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그 고민이 어떤 것인지 많은 게 걱정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심장에 들어갔다 나올 수는 없으니 정확한 말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앞뒤의 정황과 세간의 사정에 비추어 보자면, 우선 세칭 ‘문고리 3인방’으로 일컬어지는 대통령의 최측근 인물들로 인해 생긴 잡음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대통령은 이번의 문건 파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자신은 잘하고 있는데 아랫사람들이 공연한 분란을 일으켜 ‘고민’이 된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막강한 권력에 따라붙는 막중한 책임에 대해 대통령은 통감해야 한다. 문건이 유출된 것이 국기문란이라고 화를 내기보다 국민이 맡긴 막강한 권력을 몇몇 문고리를 쥔 손들과 공작의 전문가들 손에 맡기는 일의 앞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사진은 국무회의에 입장하는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사진기자단


과연 그럴까. 이에 앞서 대통령께서는 청와대 문건유출 및 ‘비선 실세’ 논란과 관련,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했다. 대통령의 진노가 어디에 있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문건의 유출도 중요하지만, 그 문건에서 다뤄진 비선 실세의 존재 여부는 참으로 공정한 국정을 운영해야 할 책무를 지닌 지도자로서 무엇보다 깊고 엄중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 하겠다. 그런데 막상 대통령의 진노는 ‘비선 실세의 문제’보다는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사실에 집중되어 있다.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사건에 진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의 권력은 막강하다. 그 권력의 위력은 너무 막강하여, 일정 기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삼권분립에 의해 견제되어 있다. 막강한 권력이므로 그 책임도 막중하며, 무엇보다 무사공정하며 투명하게 쓰여야 한다. 그것이 몇몇 사람들과 음습한 공간에서 독점된다면 민주적이지도 못하지만, 그 권력을 견제하거나 건전한 비판의 기회로부터도 차단되는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권력이 일부 사람들의 장막에 가려진 채 독점되는 경우의 불행한 결과를 우리는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정권의 선례에서 여실히 목격한 바 있다.

아버지 박정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불행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년을 돌아볼 때 그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공안과 대공 공작의 전문가로 알려진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앉힐 때부터 ‘공작정치’의 증후는 농후해졌다. ‘신유신정치’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거침없이 정치적 구도와 행태를 과거 아버지 박정희 시절의 통치체제로 퇴행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용인술은 지금도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그는 막강한 통치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심복들을 주변에 포진시키고, 다시 이들을 감시하기 위한 비선의 조직들을 거느렸다. 그에게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심복들의 배반이며, 자신의 권좌에 대한 도전이었다. 실제로 그는 18년에 이르는 장기독재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후계자나 권력의 2인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영구 권력을 준비하기 위해 대만으로 총통제를 연구하러 보낸 그였으니, 최측근의 심복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낌새가 보이면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다. 심복 중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윤필용, 김형욱, 김종필마저도 가차없이 희생되었다. 이 교묘한 용인술의 독재자는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충성을 다지기 위해, 심복들을 서로 대치시키고 경쟁시키고,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주효했고, 심복들은 군주를 위해 어떤 일도 주저하지 않았고, 다투어 군주를 위해 충성하기에 급급했다. 그 충성에 국민이나 민주는 고려할 손톱만큼의 가치도 없었다.

독재자는 이따금 안가의 은밀한 공간에 들어앉아, 자신의 측근과 심복들과 국정을 논의했다. 여대생과 젊은 여성은 안주거리로 포석된 그 은밀한 안가의 문고리는 아무나 쥘 수 없었다. 그 문고리를 쥐는 심복들의 권력은 그만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심복들을 이간시키고, 경쟁시키며 충성을 받아오던 군왕은 바로 그 은밀한 비선의 심복들로 인해 처참한 말로를 맞이한다. 독재자의 오른팔, 왼팔이라 불리던 심복 차지철과 김재규의 갈등은 그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했다. 영문도 모르는 이 나라와 국민의 운명도 그와 함께 파국에 이르렀다.

항간에 떠다니는 권력의 비선 이야기
이제 다시 문고리를 쥔 권력의 비선에 관한 이야기들이 항간에 떠다닌다. 국민들이 문고리를 만들었는가. 누가 그런 문건을 만들게 했으며, 그런 문건들로 인한 파문을 일으키게 했는가. 아직도 모른다면, 대통령이 고민할 지점을 정확히 짚어주겠다.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파문과 측근들로 인한 파란에 대해 고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시월의 마지막 밤’을 다시 목격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와 국민에게도 불행하고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막강한 권력에 따라붙는 막중한 책임에 대해 대통령은 통감하여야 한다. 문건이 유출된 것이 국기문란이라고 화를 내기보다, 국민이 맡긴 막강한 권력을 몇몇 문고리를 쥔 손들과 공작의 전문가들 손에 맡기는 일의 앞날에 대해 고민하기 바란다.

국민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임기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이라는 게 솔직한 심경이다.

 [  이 기사는 '주간경향'에도 실렸습니다]  

이시백 기자는 소설가로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경야독하고 있음. 주요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와 소설집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 11회 채만식 문학상을 받음.
 
기사입력: 2014/12/18 [12:52]  최종편집: ⓒ 남양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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